[원문]:A moment ago, I had inwardly chastised Ferenczi for expressing revulsion at a "deviant" sexual act--a revulsion I, for some reason, did not exactly share, despite Freud's remark about what all decent people feel. I had just been telling myself that every lesson taught by psychoanalysis undercut society's disapproval of so-called sexual deviance. Now, however, I found myself awash in a similar feeling. The wish Freud imputed to Miss Acton revolted me. Disgust is so reassuring; it feels like a moral proof. It is hard to let go of any moral sentiment anchored by disgust. We can't do it without setting our entire sense of right and wrong a-tremble, as if we were losing a plank that supported the whole fabric. (The Interpretation of Murder, Jed Rubenfeld)
[원문역]:조금 전만 해도 나는 페렌치가 ‘변태적인’ 성행위에 강한 불쾌감을 표현한 일을 두고 마음속으로 비난했다. 프로이트는 점잖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감정이라고 했지만, 나 자신은 무슨 까닭인지 그런 불쾌감을 공유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막 자신에게 정신분석학에서 배운 모든 교훈은 이른바 성적인 변태 행위에 대한 사회의 비난을 약화시킨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 또한 같은 감정에 젖어 있었다. 프로이트가 들춰낸 노라의 욕망은 내게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혐오감이 오히려 위안을 주는 도덕의 증거로 여겨졌다. 혐오에 단단히 붙들린 도덕적인 감상을 떨치기는 어려웠다. 전체 조직을 떠받치고 있는 기반을 잃어버리듯, 옳고 그름에 대한 모든 감각을 뒤흔들지 않고서는 도덕적인 감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살인의 해석, 비채출판사)
[통하게 해야 합니다]:1)번역이란 원전에 충실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종국적으로는 “통 (通)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2)지금 이 단락의 번역을 두고 말한다면 독자는 “알듯 모를 듯 할 것”입니다. 사실, 이런 경우 번역자에게 “이 단락의 도대체 무슨 의미입니까?”라고 물을 경우 번역자가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 그런 경우일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단락의 경우 번역자 자신도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주제를 파악해야]:1)주제를 파악해야 합니다. 번역의 경우 개별 문장을 차례로 번역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문장만으로는 그 의미가 분명치 않을 경우에는 독자 또는 번역자가 그 단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이때에는 주제를 파악하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합니다. 2) 이 단락의 주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도 인간의 도덕성 또는 도덕 감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도덕 감정이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에 대한 판단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저자에 의하면 “싫은 걸 싫다고 느끼는 혐오감”이 그런 도덕 감정을 측정하는 순도 (純度:proof)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막 자신에게 ...말했다]:1)역자는 이 단락의 제2문장에서 “...나는 막 자신에게 정신분석학에서 배운 모든 교훈은 이른바 성적인 변태 행위에 대한 사회의 비난을 약화시킨다고 말했다.”운운하고 있는데요. 참으로 어색하고 “통하지 않는 번역”입니다. 2)원전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죠. 그 시제는 과거완료형, 그 시상 (時相:aspect)은 과거완료진행형이 아니었던가요?
[key words]:이 단락에서 키워드를 꼽으라면 물론 그 단어는 revulsion입니다. 그리고 revolt. disgust등이 파생어이거나 동의어 또는 개념어입니다.
[Disgust is so reassuring]:1)역자는 이 부분을 “혐오감이 오히려 위로를 주는” 운운하고 있으나 무슨 위로를 준다는 것인지요? 2)so reassuring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에서 “아주 안심이 된다”
[{{Disgust is so reassuring; it feels like a moral proof.}}의 의미]:1)역자는 “혐오감이 오히려 위안을 주는 도덕의 증거로 여겨졌다.” 충분하지 않습니다. 2)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해설자인 나 (I), 즉 닥터 영거는 동료 의사 페렌치가 보인 그 역겨움을 느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프로이트의 신도라면 뭐 그 정도에 역겨움을 느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학문적 스승인 프로이트가 “그런 혐오감은 정상적인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말해서 스스로에 대해서 혼란도 느끼던 차였는데 노라 액튼이 자신의 부친에게 펠라시오 (fellatio)를 해주고 싶은 욕망을 억제했다는 말을 듣자 강한 혐오감을 느꼈고 그때 “나”, 즉 닥터 영거는 “아, 나도 혐오감이라는 정상적인 정서를 갖고 있군,”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삼는다는 함의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도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부분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I feel like a moral man"이라고 하지 않고 ”it feels like a moral proof"이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싫은 걸 싫다고 느끼는 그 혐오감의 감정이 도덕적 순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라고 옮겨야 합니다.
[정역]:한 순간 전 페렌치가 ‘변태적인’ 성행위에 강한 혐오감을 표현한 것에 대해서 나는 은근히 그를 나무랐었다. 그 혐오감을 점잖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만한 감정이라고 프로이트도 말했지만, 나 자신은 무슨 까닭인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일반 사회에서야 그런 변태적 성행위를 인정하지 않지만 정신분석학에서는 너그럽게 인정하는 게 아니냐고 나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 지금은 나 또한 (페렌치와) 유사한 감정에 휩싸였다. 노라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펠라시오를 하고 싶어했을 것이라고) 프로이트가 지적하자 내가 역겨움을 느꼈던 것이다. 나도 혐오감을 가졌다는 사실이 아주 안심이 된다. 그 혐오감이야말로 도덕적 순도인 것 같다. (그가 아무리 열렬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의 지지자라고 해도) 혐오감이란 정서에 단단히 고착된 도덕 감정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기둥을 빼면 건물 전체의 얼개가 어그러지듯이 우리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완전히 뒤흔들고서야 그 무엇도 바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comments]::1)What counts is communication. The translator should get an original author's messages across to his or her readers. A failure who has been frustrated to do so doesn't deserve to be addressed as a translator.
2)Readers of the original text should take note of key words and the theme in such paragraphs as this, among all things. The key words are revulsion and disgust, and their peripheral terms and the theme of the paragraph is that the reaction of revulsion as seen toward sexual perversions is extremely natural as a decent human being.
3)Readers and the translator of this paragraph should take note of the psychological shift as seen in the protagonist cum narrator, the first-person I, Dr. Younger that is. The narrator had initially maintained a very liberal attitude toward the sexual perversion, but the moment the episode of fellatio instinct of Nora Acton was mentioned by Freud, Dr, Younger finds that he himself holds disgust toward the perversion (deviance) itself.
4)The problem of this kind of translation is that the version writer is equivocating, or prevaricating. In such a case, the eyes of the readers are following the printed words, but their brains can't follow what he means by equivocations. Meteorologically speaking, five-mile trails are shrouded in heavy fogs.
5)Do you, the translator, see Dr. Younger's self-enlightenment? He does a slow take when he says that it's so reassuring; it feels like a moral proof. What's so reassuring? It's that he has the sentiment of disgust toward some deviant inclinations of human sexuality.
6)You can see the translator's equivocations are exposed at the last sentence of the paragraph. It's been a proof of five-mile-long fog stretch. In fact, the last sentence amounts to the conclusion of the paragraph, whose semantic implications are that revulsions toward perverted sexual inclinations (even if they were supported by academic theories) constitute hallmarks of saner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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